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삶과 죽음을 뒤바꿔 부조리한 세상을 견디는 사람들의 이야기
표제작인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에는 2, 3, 4, 6, 7과 같이 이름도 없이 숫자로 표기되는 인물들과 점쟁이, 운전기사, 산파, 회색 옷 입은 여자 등이 함께 등장한다. 이들은 누구 하나 예외랄 것도 없이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간다, 죽고 죽이고, 사고팔고, 무정하게 내팽개치거나 탐욕스럽게 빼앗는다.
병색이 짙던 7은 아내와 함께 점쟁이를 찾아가 다섯 살짜리 아들을 수탉 한 마리와 바꾼 뒤 건강을 회복한다. 예순이 넘은 3과 그녀의 열일곱 살짜리 손자는 한 침대에서 밤마다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아이를 갖는다. 그 아이가 자기 자식이 되는지, 증손자가 되는지 고민하던 3에게 점쟁이는 그 아이를 자기가 기르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6은 자신의 여섯 딸을 각각 삼천 위안에 팔아넘기고 부자가 된다. 그의 일곱째 딸은 매일 밤 악몽을 꾸며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예감한다. 회색 옷을 입은 여자는 운전기사의 트럭이 그녀의 옷을 밝고 지나간 뒤 이상한 죽음을 맞고, 운전기사는 회색 옷을 입은 여자의 아들이 결혼하던 날 2와 신부를 사이에 둔 장난을 벌이다 자살에 이른다. 네 자식을 앞서 보낸 점쟁이는 자기가 장수하는 이유를 깨닫고 어린 여자아이를 데려다 양기를 보충한다. 4의 아버지는 자신의 열여섯 살짜리 딸을 점쟁이에게 바친다. 귀신의 아이를 받은 산파는 얼마 후 목숨을 잃고, 6의 일곱째 딸도 결국 강물에 몸을 던진다. 점쟁이의 다섯째 아들도 죽고, 4도 강물에 몸을 던진 뒤 살아갈 이유를 잃은 장님도 마찬가지로 강물에 뛰어든다.
가장 가까운 이들인 가족과 이웃 관계에 숨어 있는 폭력과 살의는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과 기존의 윤리, 도덕에 대한 풍자이자 조롱이며, 죽음에 대한 다양하고 상세한 묘사는 그만큼이나 살아내기 어려운 현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뒤의 세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강가에서 일어난 일〉에서는 자신을 가장 가까이서 돌봐준 할머니를 이유도 없이 살해한 미치광이를 끝내 보아 넘기지 못하고 죽인 뒤 혐의를 벗기 위해 미치광이 행세를 해야 했던 형사 마저가 등장한다. 〈옛사랑 이야기〉는 대저택의 아가씨에게 첫눈에 반한 류성이 인육시장에서 끔찍하게 죽어간 아가씨의 환생을 바라다 결국 자신의 잘못으로 아가씨를 영영 잃고 마는 이야기다. 끝으로 〈어떤 현실〉은 일상에 숨은 폭력을 가장 확연히 드러내는 작품으로 아무 생각 없이 사촌동생을 떨어뜨려 죽인 피피가 발단이 되어 산강과 산펑 형제의 역겨운 복수극이 펼쳐지고, 이어서 총살당한 산강을 산펑의 아내가 의사들에게 기증해 산산이 토막 나게 하는 엽기적인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이렇다 할 원한도 없이 계속되는 물고 물리는 죽음의 연쇄는 우리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그래서 더욱 진실에 가까운 우리 내면의 공포와 폭력, 잔인함과 이기심, 맹목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만큼, 위화는 관계에 대한 모든 아름다운 신화를 철저하게 조롱하고 비판한다. 어떤 가치 판단도 하지 않고, 조금의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냉정한 필치는 다소 엽기적인 상황 설정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잠들어 있던 의식을 차갑게 일깨운다. 인간의 잠재적인 폭력성에 대한 천착은 아마도 중국 현대사의 고통스런 기억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편소설집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는 폭력과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던 시대를 죽고 죽이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통해 극복하고, 인간성의 진실한 일면을 회복한 새로운 삶으로 창조하고픈 작가의 바람이 강렬하게 투영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