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과장의 사과 한 상자
당신의 윤리지수는 몇 점입니까?
거래처에서 우연히 얻어먹은 밥은 윤리경영에 위배되는 걸까? 친한 선배의 사적인 부탁은?
윤리경영을 도입한지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기업들의 윤리경영 현주소는 어디일까? 많은 기업들이 윤리경영을 표방하고 나섰지만 정작 실태를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비자금 조성, 회사공금 횡령, 편법상속증여 등 사건의 양상들도 가지각색이다. 최근에는 모 대기업 총수가 사적인 복수(?)를 위해 직권을 남용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CI까지 바꿔가며 기업 이미지를 쇄신하려던 기업의 노력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돼버렸다. 이렇듯 기업의 윤리경영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이유는 경영진들의 윤리경영에 대해 확고한 소신과 제대로 된 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당황스러운 것은 직원들이다. 정작 회사에서는 윤리경영을 한다고 하지만 도대체 윤리경영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혼란스러워한다. 직원들이 윤리적인 비리에 쉽게 노출되는 원인을 살펴보면 고액연봉, 승진보장 등 금전적인 사리사욕추구, 사회전반적으로 만연한 한탕주의 등이 꼽힌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파헤쳐보면 또 다른 성격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정에 얽매여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기업의 윤리적인 지침이 명확하지 못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 양세영은 오랫동안 전경련에서 몸담으면서 기업의 윤리경영 정책과 직장인들이 현장에서 겪는 경험 사이의 괴리감을 목격하면서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자 『박과장의 사과한상자』를 저술했다. 『박과장의 사과한상자』는 평범한 대기업 과장이 뇌물사건에 얽히게 되면서 겪는 우여곡절 스토리를 현실감 있게 풀어낸 우화이다. 주인공 박과장은 총 세 번의 윤리적인 갈등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첫째, 박과장은 개인적인 승진을 위해 협력업체 선정에 부조리를 저질렀다. 둘째, 협력업체 선정과정에서 오랫동안 거래해온 업체 사장과 개인적인 친분으로 갈등한다. 셋째, 직장동료와 상사가 얽힌 비리사건에 내부고발자로서 갈등상황에 놓인다.
이 상황들은 일반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겪을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든다. 개인적인 욕심은 접어두고서라도 직장상사의 권위에 눌리지 짓눌리지 않고 직장동료들을 배신하면서까지 윤리적으로 떳떳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박과장의 사과한상자』는 우리 기업들의 윤리경영이 얼마나 모호하고 막연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도서는 이론이나 해외 기업비리사건을 다룬 딱딱한 책이 아니라 실제 직장인들이 겪을 수 있는 상황을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읽는이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