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이 부르는 소리
잭 런던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대표작, 『야성이 부르는 소리』
클론다이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야성의 삶과 모험 그리고 사랑
문명을 향한 야성의 진지한 물음! 작가는 결국 인간이 사는 세상을 그리고 싶었다!
18편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단편소설, 논픽션 등 수백 편에 이를 만큼 많은 작품을 남긴 잭 런던. 20세기 초 한 시대를 풍미하며 미국 대중들이 가장 즐겨 읽는 작가였으며, 오늘날까지 8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며 세계인이 꾸준히 읽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세대와 국경을 초월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심성을 담고 있다.
런던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세계에 상상력을 가미하여 구수한 입담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렇기에 작품 속에는 언제나 생생한 삶의 긴장과 생동감이 흘러넘친다. 마치 내가 가보지 못한 먼 곳에서 흥미진진한 일을 겪고 온 나그네가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 같은 그의 작품은 언제나 사람의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야성이 부르는 소리」는 그런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은 독자들이 흥미진진하게 읽은 소설 중 하나이다. 1903년 발표된 이 작품은 발표된 그해만도 1만 부 이상 팔렸고, 1909년에 이르러서는 무려 75만 부가 나가면서 그를 이른바 베스트셀러 작가의 대열에 오르게 만들었다.
문명에 길들여진 개가 강제로 알래스카로 옮겨져 설원의 썰매개로 살아가면서 고초를 겪게 되고, 점차 적자생존의 논리에 익숙해지며 잃어버린 야성을 되찾는다는 이 이야기는 읽다 보면 한 마리 개의 이야기가 아닌 잔인할 만큼 치열한 인간 사회와 겹쳐 보인다.
소설의 무대가 된 알래스카 일대는 작가가 직접 한동안 지낸 곳이기도 하다. 1897년 알래스카의 클론다이크 강 일대에 금광이 발견되자 많은 사람들이 그 척박한 땅으로 향했는데, 잭 런던 역시 일확천금의 꿈을 갖고 그곳을 찾았다. 1년 반 정도 그곳에서 금광을 찾으려 했던 그는 결국 소득 없이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이후 그곳의 경험으로 베스트셀러를 낳는 노다지를 캐게 되었다.
이 책 『야성이 부르는 소리』에는 잭 런던이 알래스카 클론다이크에서 지낸 경험을 살려 쓴 「야성이 부르는 소리」, 「불을 피우기 위하여」, 「북쪽 땅의 오디세이아」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20대 초반의 런던이 각양각색의 노다지꾼들과 지내면서 금보다 더 값진 무수한 이야깃거리를 얻어 지어낸 이 작품들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눈 덮인 광활한 얼음 땅 위로 죽음과도 같은 적막, 무서운 추위와 어둠, 지독한 굶주림이 느껴진다.
작가가 젊은 시절 겪은 혹독한 자연, 그 안에서 마주친 야성에 대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문학의 금광이 된 이 책으로 독자는 이전에도 경험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겪기 힘든, 설원 위 야성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오로지 생존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대설원의 극한 자연
그곳에서 펼쳐지는 생(生)을 향한 처절한 사투!
도시에서 태어나 문명에 길들여진 개로 살다가 영문도 모른 채 알래스카의 혹독한 자연으로 내몰린 벅. 그가 극한의 자연에서 생존법칙을 깨우치면서 야성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야성이 부르는 소리」의 기본 줄거리이다.
세인트버나드와 스코틀랜드 셰퍼드의 피를 이어받은 벅은 늑대와 흡사한 외모에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굴하지 않는 강인함을 가졌다. 하지만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살았던 터라 혹독한 매질과 굶주림, 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된 노동은 너무나 갑작스런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야생의 개들 사이에서 점차 살기 위해 적응해가는 벅은 원시 세계의 법칙을 배워간다. 그것은 죽느냐 죽이느냐, 먹느냐 먹히느냐라는 적자생존의 법칙이다. 살아남기 위해 벅은 강자와 약자를 구분할 줄 알게 되며, 도둑질을 익히며, 개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싸우는 법을 터득한다.
하지만 결국 썰매끌이 개를 다룰 줄도 모르면서 치기로 여행을 온 부부가 벅과 그의 동료들에게 가혹하게 굴자, 벅은 죽기로 작정하고 사람의 명령에 불복종한다. 그런 벅을 구해내 따뜻한 온정을 베푸는 존 손턴을 만나면서 벅은 그나마 평온한 일상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대자연의 숲에서 그가 조우한 야생의 늑대들은 벅의 몸속에 깊이 숨은 야성을 일깨운다. 자신의 핏속에서 들끓는 원초적 욕망과 따뜻한 인간의 유대 사이에서 갈등하던 벅은 결국 단 하나만을 선택한다.
작가는 벅이라는 한 마리 개가 겪는 격한 삶의 여정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다. 벅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모험담이지만, 그가 처한 현실과 생존을 위해 겪는 사투, 권력을 둘러싼 싸움과 연대, 배신과 복수, 그리고 비록 개들이지만 각자의 소신과 개성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결코 동물들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잭 런던이 클론다이크에서 겪은 수많은 억센 사람들과 척박한 그 땅의 인간 사회에서 벌어졌을 일들을 가늠하게 만든다.
「야성이 부르는 소리」는 본성, 문명, 권력, 사회에 대한 가장 원시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그렇기에 세대와 국경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열광한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한 작가가 창조한 개들의 이야기가 오늘의 우리를 살펴보게 하는 힘이 분명 소설 읽기의 감동으로 전해지며, 오늘의 우리를 다시 보게 한다.
이 책의 두 번째 작품 「불을 피우기 위하여」는 영하 45도의 혹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 남자의 사투를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 공포를 줄 정도이다. 자만심으로 개 한 마리만을 데리고 동료들과 합류하기 위해 설원으로 나간 남자가 몸이 얼어가는 상황에서 불을 피우려 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실패로 사지가 하나씩 얼어가고, 몸의 감각마저 무뎌진다.
성냥을 한 번 긋는 단순한 행동도 하지 못하게 된 남자는 점점 극심한 공포에 휩싸이고, 불을 지피는 게 힘들다면 자신과 함께 온 개의 배라도 찢어 그 안에 손을 녹일 결심을 한다. 하지만 개는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주인 곁에 가까이 오지 않는다. 남자는 캠프로 뛰어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일단 뛰기 시작하니 몸이 따뜻해지면서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의 모든 시도는 오만일 뿐이다. 작가는 출구가 없는 인간의 절망적 상황을 대자연의 극심한 추위를 통해 소름끼치게 표현하고 있다.
세 번째 작품 「북쪽 땅의 오디세이아」는 백인이 앗아간 사랑하는 여자를 찾기 위해 알래스카 설원까지 찾아간 인디언 추장의 이야기이다. 인디언이라는 이유로 온갖 욕설과 냉대를 받으면서도 백인들을 위해 뱃일을 해온 그는 오직 사랑하는 여자의 행방을 좇기 위해 모든 것을 참아왔다. 결국 알래스카까지 오게 된 그는 여자를 찾게 되지만 운명은 조롱이라도 하듯 그의 믿음을 가차 없이 배신한다.
여자가 자신을 기다렸을 거라는 생각은 결국 현실 앞에 모두 허망해진다. 여자는 이미 오래전에 그를 잊었고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백인 남자와 지내온 호화로운 삶에 길들여졌던 것이다. 북쪽 땅의 차가움보다 더 싸늘해진 여자의 돌변에 충격을 받은 인디언 추장, 그리고 그가 사랑한 여자와 죽이고 싶은 그녀의 백인 남편. 이 세 명은 마지막 순간 알래스카의 설원에 고립된 상태로 조우한다. 인디언 남자는 설원에서 죽어가는 여자를 데려가려 하지만, 그녀는 죽은 남편을 떠나지 않는다. 결국 그는 자신이라도 살기 위해 사랑도 복수도 뒤로 한 채 길을 떠난다.
작가는 알래스카 설원까지 오게 된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삶의 이면에 숨은 어긋난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보여준다.
클론다이크 3부작이라 할 만한 이 세 이야기는 잭 런던이 젊은 시절 일확천금을 꿈꾸며 찾았던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 시절 그가 체험한 인간 욕망의 바닥과 혹독한 자연 그리고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냉혹한 힘의 법칙이, 현실보다 더 극명한 사실처럼 소설의 곳곳에서 예리하고 섬뜩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한 단어로 요약된다. 그것은 ‘야성’이다. 작가는 결국 야성 속의 인간 또는 인간 속의 야성을 그리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