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신을 부르지 마옵소서 - 사직상소, 권력을 향한 조선 선비들의 거침없는 직언직설
권력을 향해 거침없이 던지는 조선 선비들의 뜨끔뜨끔한 돌직구, 사직상소!
자리를 탐하지 않고 권력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어온 조선 500년 역사, 이들로 인해 지금의 우리는 그 시대의 품격을 음미할 가치를 얻었다!
목숨을 걸고 권력을 향해 거침없는 직언직설을 던진 조선 선비들, 지금 우리에게 그들이 보여준 품격과 지조!
당파와 정견을 떠나 조선 시대 선비들이 공직에 대해 가진 기본 정신은 대동소이했다. 그것은 부귀나 명예, 권력과 같이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구성원들을 위해 헌신하는 공적인 데에 있다는 것이다. 선비들이 공공의 일에 나아갈 때에는 무엇보다도 도덕성과 책임감, 공정함, 정당성의 가치를 중요시했다. 선비들은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해준 선한 본성을 깨닫고 이를 회복하여 사회적으로 확산해야 한다는 의무, 자기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백성을 위해 남김없이 바쳐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신념은 자연스레 정치 참여로 이어졌다.
그러나 임금이 무도하고 정치가 혼탁하여 도덕과 의리가 땅에 떨어진 세상이라면, 그리고 자신들이 가졌던 의무와 신념을 실현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목숨을 걸고 싸울지언정 구차하게 관직을 유지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높은 관직이라도 주저 없이 버릴 자세가 되어 있었다. \'선비에게 바른말을 하는 친구가 있으면 아름다운 이름을 잃지 않고, 아비에게 바른말을 하는 자식이 있으면 불의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소학(小學)』의 구절처럼 불의한 권력에 눈치를 보거나 아부를 하며 말을 삼가는 일을 극히 경계했던 것이다.
조선 선비들의 이러한 신념은 \'출처론(出處論)\'으로 표현된다. 선비들은 공직에 나아가 나라와 구성원을 위해 일할 때와 미련 없이 물러나서 자신을 수양하며 기다려야 하는 때를 구분했다. 선비들은 왕이 부르면 일단 조정에 나아가지만 왕이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민심을 외면하고 바른 정치를 펼치지 못한다면 자리를 박차고 바로 관직을 떠났다. 선비들에게 헌신과 충성의 대상은 ‘왕’이 아니라, 하늘과 백성의 대리자인 ‘왕의 역할’이기 때문에 왕이 왕답지 못하면 국정에 참여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는 가차 없이 떠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출처론의 핵심은 더럽고 어지러운 정국을 외면하며 홀로 벗어나는 데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불의에 굴하지 않으며 정치의 잘잘못을 조목조목 따지고 임금과 조정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마다지 않는 것이 선비들의 정신이었다. 이러한 정신은 \'사직상소(辭職上疏)\'라는 독특한 문화를 통해 잘 드러나 있다. 요즘 흔히 \'일신상의 사유로 사직합니다.\'와 같은 모호한 내용의 사표와는 차원이 달랐다. 자신의 명예와 직을 걸고, 더 나아가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관직을 맡은 자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고 했던 노력이 사직상소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 책에는 스물 일곱 명의 선비들이 던진 사직상소 스물여덟 편이 실려 있다. 그 선비들은 각각 다른 시대와 국내외 정치 환경 속에서 다른 임금을 모시며 살았다. 당면했던 문제점과 폐단도 달랐고 고민도 제각기 달랐다. 그러나 이 상소들을 들여다보면 중요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수없이 닥치는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사심을 버려야 하고 도덕적이고 공정한 마음가짐으로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임금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는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해야 하며 항거해야 한다. 이러한 요청이 지켜지지 않을 때에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목숨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고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대비를 과부라 하고 임금을 고아라 서슴지 않고 불렀던 조식의 대쪽 같은 사직상소, 나라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끊임없이 임금을 설득했던 이이의 사직상소, 조선 시대를 통틀어 선비의 원칙과 기준을 제시했던 조광조의 사직상소와 같이 유명한 선비들의 사직상소가 실려 있다. 또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장현광, 정시한, 이정귀, 이준경 등의 놀라운 사직상소들이 실려 있다. 더불어 우리 시대의 일반인들에게 권력을 탐하기만 하던 인물로 알려진 김조순과 업적과 역할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고 평가절하된 송준길이 선비의 정신을 지키고 절제와 균형 감각을 유지하며 명예와 관직을 사양하고 한발 물러서는 장면은 뜻하는 바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숨은 주인공은 사실상 최명길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자신이 당대와 후세에 비난을 받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뜻한 바를 감추지 않았다. 명분과 의리를 고수하고 고고한 절개를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정을 담당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백성과 국가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정치가라면, 그가 진 책임은 개인의 신념을 넘어선다. 그 책임을 위해서라면 개인을 뛰어넘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는 오명을 뒤집어쓸지언정 공동체를 지켜내야 한다는 자신의 책임을 막중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우리는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큰 격변기를 겪고 있는 우리 시대에 조선 선비들이 주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연일 뉴스에 보도되고 있는 바대로 권력의 눈치를 보며 아부하고 부정부패를 일삼고 사회적 약자를 안하무인으로 대하는 정치가와 고위직 공무원 들을 날마다 접하는 이때에 이 책은 지난 시대의 선비들과 지식인들이 품었던 신념과 이상을 또렷하고 날카롭게 전달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가장 먼저 봐야 할 독자는 바로 자신이 무한한 권력을 지니고서 국정을 제 맘대로 좌지우지한다고 믿는 사람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