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하트, 안녕하십니까
‘천재는 단명’이라는, 진부하지만 설득력 있는 말!
작가로서의 삶은 짧아도 작품은 영원하다.
가지이 모토지로의 작가생활은 실질적으로 7년 정도에 불과하고 본격적인 평을 받기 시작한 시기는 죽고 나서다. 서른 한 살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했으나 그의 이름과 작품은 일본 현대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치로 빛나고 있다.
세상을 뜰 때까지 죽음을 의식하면서도 향락과 쾌락을 추구하고 신변잡기적인 소재를 솔직 담백하게 써내려간 작품들은 불멸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사후에도 다듬어지지 않은 원고가 여러 편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저자는 죽는 순간까지도 집필에 대한 욕망과 열정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소개하는 다섯 편의 소설은 어린아이와도 같은 저자의 순수하고 솔직한 감성을 선사함과 동시에 얼어붙은 가슴을 두드릴 것이다. 독자는 마음의 문을 열어 따스한 볕을 받을 준비만 하면 된다.
<저자소개>
가지이 모토지로(梶井基次?, 1901~1932)
오사카에서 태어나 전근이 잦은 아버지를 따라 여러 지역을 돌며 유년기를 보냈다. 중학 시절에는 수영과 음악을 좋아하는 비교적 얌전하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1918년에 결핵으로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이때 형이 빌려준 모리오가이(森?外)의 전집을 읽기 시작하면서 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19년 다이삼(第三)고등학교 이과에 입학한 후에는 같은 학교에 입학한 중학교 동창들의 하숙집을 순회하면서 레코드를 틀어놓고 바이올린을 켜거나 악보를 보면서 오페라를 부르는 등 대학생활을 즐겼다. 자아의 확립을 추구하면서도 술을 즐겨 마시고 순간적인 여흥이나 향락에 취해 자신을 내던졌다가도 후회하며 자기혐오에 빠지기를 반복했다. 교내 극연구회에 들어가 시와 희곡을 여러 편 창작했으며, 레몬 하나에 위안을 얻는 심경을 산문시 형태로 일기에 기록하는 한편 <하찮은 양심> 등의 습작도 남겼다.
1924년 다이삼고를 졸업한 후 도쿄제국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다. 동급생이 만든 동인지 《신사조》에 자극을 받아 1925년1월에 《아오조라》(?空)를 창간했으나 2년 만에 28호를 끝으로 폐간했다.
1932년1월에 <태평스런 환자>를 《중앙공론》에 발표하기까지 병중에서도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으며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 문인들과의 교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등 중앙지에서 그를 거론하기 시작했고 호평을 얻었으나 그 해 3월에 31년의 생을 마감했다. 그는 항상 ‘죽음’을 의식하며 생활했기 때문에 작품 곳곳에도 죽음에 대한 고민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병적이고 어둡지는 않았다. 오히려 장난스러운 표현과 해학을 문학 속에 담아냈기에 그의 가치가 더욱 빛났다. 작가로서의 삶은 7년여에 불과하고 사후에 작품들이 인정받기는 했지만, 일본 자연주의나 사소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감각적이고 시적인 작품세계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일본문학의 고전으로 자리를 굳혔다.
대표작으로는 <레몬> <성이 있는 마을에서> <겨울날> 등이 있다.
<역자소개>
정현옥
대학교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학교와 직장을 다니며 20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글 읽는 이들이 참으로 신나게 책장을 넘기는 ?신 번역가를 모토로 기획 및 번역에 힘쓰는 한편, 통·번역 자원봉사 단체인 비비비코리아, 조인어스코리아의 회원으로 재능기부를 통한 사회 기여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번역한 작품으로 <기다림의 힘> <40부터 빛나는 여자, 시드는 여자> <들국화 무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