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전 시집 : 건축무한육면각체 - 윤동주가 사랑하고 존경한 시인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천재라는 수식어가 박제된 유일한 시인
건축학을 전공한 문화예술계의 이단아
최근에 한 방송에서 김상욱 교수는 이상을 건축학의 천재였다고 극찬하면서 시인 이상에서 건축가 이상으로 재조명 되고 있다. 스물일곱이라는 짧은 생에서 그가 한일은 너무나 방대하다. 서울공대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를 수석 졸업을 하고, 디자인 공모에도 1등으로 당선되고, 시, 소설, 수필, 그림까지 유명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다방과 술집을 경영하고, 떠들썩한 금홍이와의 사랑과 김환기 화백의 아내일 때는 김향안이 처음에는 이상의 아내로 일본에서 사망당시 마지막을 지켜준 변동림이다. 이렇게 27년 살다간 천재의 행적을 추적하다 보면 경외심과 함께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이 시집은 『이상 전집』에서 시집을 초판본 순서 그대로 정리하여 첫 발간 당시의 의미를 살리되, 표기법은 기존의 초판본 시집의 느낌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게 현대어를 따름으로써 읽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으며 이상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꼽히는 소설 ‘날개’와 수필 ‘권태’, ‘슬픈 이야기’, ‘동경’을 함께 실었다. 특히 ‘동경’은 그 당시 동경의 모습과 사회상을 비판적으로 담아 문제작으로 읽히고 있다.
여기에 실린 이상의 작품 가운데는 일본어에 한자를 섞어 창작한 원작들이 꽤 있다. 『이상 전집』을 현대어로 정리하는 데 있어 ‘한자’ 표기 여부를 깊이 고심한 끝에 이상의 추상적이고 난해한 시들, 게다가 띄어쓰기를 무시한 시 대다수를 한글로만 써서는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가깝게 다가오지 않는 작품 속 단어들의 경우 ‘한자’ 표기를 병행하고 각주로 해설을 해 두어 이상의 작품들을 조금이나마 편히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이상의 시대, 이상의 천재성, 이상의 개인사들을 탐색하며 한 발 한 발 그의 작품세계로 걸어 나간다. 작품이 난해해서 읽히지 않았는데 이젠 그 난해함 덕분에 읽히고 있다. 이 책을 펴내는 출판사로서 우려가 되는 부분이 있어 한 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이상의 시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가 어려운 이유는 정답이 있다고 믿고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는데 찾으려고 하니 당연히 시를 읽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시의 답은 시인에게 있지 않고 독자에게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 분들이 저마다의 답을 내리고 이상이 생전에 발표한 글, 그의 유고, 이상의 습작 노트, 그 외의 발굴 자료 등을 편안하게 읽어 내려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세상에 풀어 놓는다.
90년 만에 풀린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
이상의 작품들은 난해하고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이유로 생전에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다. 이상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오감도』 역시 처음 조선중앙일보에 실렸을 때도 그 난해함과 추상성으로 인해 독자들의 거센 반발을 받았고 결국 15편을 끝으로 연재를 중단했다고 한다.
이런 난해함 때문에 과거엔 읽히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난해함 덕분에 그의 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 실제로 그의 시 중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물리학에 대입해 해석한 논문이 세상에 나와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2020년 광주과학기술원(GIST)을 졸업한 오상현 씨와 이수정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는 기하학을 이용해 풀어야 하며 『삼차각설계도』라는 시와 같이 놓고 봐야 해석이 된다고 주장했다. 오상현 씨는 “삼차각설계도는 4차원 시공간에서의 설계, 건축무한육면각체는 4차원 시공간에서의 건축”이라고 말했다. 쉽게 말하자면 『삼차각설계도』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도면이라는 것이다. 『건축무한육면각체』한라는 의미는 한 사각형이 다른 사각형의 중심선을 관통하고, 또 다른 사각형이 관통하는 것이 무한하게 반복되면서 4차원까지 확장된다는 것인데 이렇게 해석한 결정적인 이유는 투상도법이다. 투상도법이란 건축가들이 설계도를 그릴 때 기준면을 잡는 대표적인 면을 말하는데 이상이 실제로 건축가였기에 이를 시에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처럼 놀라운 시를 써내는 이상의 대표작 날개의 첫 줄에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고 시작한다. 이 첫 줄에서 묻어나오듯 이상은 자신을 여러 방면에서 천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를 아는 지인들은 이상을 천재로 평가했으나 그때 당시엔 그의 천재성이 주목받거나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이상은 건축과 문학, 외국어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다. 이상은 본래 화가가 되고 싶어 했으나 백부인 김연필(金演弼)의 요구에 따라 현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를 건축과 수석으로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술사로 취직했으며, 조선건축회 정회원이 된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에 조선인으로선 이례적인 인사였다. 그만큼 이상의 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건축회의 회원 자격으로 1929년 《조선과 건축》 디자인현상공모에 2편의 표지화를 응모했다. 그의 작품은 1등과 3등에 선정됐으며, 1등 당선작은 1930년 1월부터 12월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화로 활용됐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수필 ‘동경’
혹자는 이상이 조선총독부에 근무했다는 사실과 일본어로 시를 썼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상은 전체주의, 군국주의를 매우 혐오한 사람이었다. 친일행위를 한 행적도 기록된 게 없으며 단순히 생계를 위해 일을 했을 뿐이라는 게 정설이다. 오히려 이상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도시 문명을 비판하는 「동경(東京)」이란 수필을 썼다.
이상은 일본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봤지만, 일본인이라고 무작정 싫어했던 건 아니었다고 한다. 이상 사후 1960년대에 그의 여동생인 김옥희 씨의 잡지 인터뷰에 따르면, “오빠는 전체주의이면서 군국주의였던 일본을 국가적인 관점에서는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일본 사람이나 일본 문화라고 해서 특별히 싫어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이상은 조선총독부에 근무했을 때도 한 일본인 상사와 코드가 잘 맞아 친하게 지냈다고 하며, 작품 대부분도 일본어로 썼고 동시대를 살았던 일본인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 龍之介)를 동경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작품 내에는 일본 문화가 많이 담겨 있다.
이상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상이 되었나?
이상(李箱)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며 이상은 필명이다. 이 이상한 필명의 유래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공사장 유래설’로, 이상의 여동생인 김옥희 씨는 《신동아》에 기고한 글에서 김해경이라는 이름이 바뀐 것은 당시 건축공사장에서 김해경을 ‘긴상’이라 불러야 하는데 건축공사장 환경상 소음도 크고 일본인들이 발음도 잘되지 않아 ‘리상’으로 잘못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밝혔다. 이상의 오랜 벗인 김기림(金起林) 역시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두 번째로는 이상의 친구였던 화가 구본웅(具本雄)이 경성고등공업학교에 입학했을 때 준 오얏나무(李: 오얏나무 리)로 만들어진 화구상자(箱: 상자 상)를 받고 친구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서 이상이라는 필명을 정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전자는 말뿐이고 후자는 보성고보 시절 이상이 직접 디자인한 졸업 앨범에 이상이라고 서명한 것이 있어 보다 설득력이 있다.
이상은 동경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4월 17일 새벽 4시에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변동림이 그의 유해를 화장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었으나, 돌보는 이가 없다가 6.25 전쟁 후 미아리 공동묘지가 사라지며 유실되었다.
그의 유언이 “레몬 향기가 맡고 싶소”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후일 이상의 아내였던 변동림이 “멜론이 먹고 싶다”였다고 술회했다. 변동림(卞東琳)은 후에 김향안(金鄕岸)으로 개명하고 김환기 화백과 재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