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
▪ 환상과 관념의 세계에 꽉 들어찬 습기로 축축한 어둠의 상상, 1부
작가는 환상동화소설인 <눈동자>에선 은하철도999와 같은 상상력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소설’을 콘셉트로 잡고,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에서 조용하고 어둡게 관조하는 삶과 환상을 시적으로 읊조린다.
<달리의 형상>에서는 이러한 어두운 환상적 기조가 더욱 강화된다. 작가는 강렬하고 때로는 자극적인 극한의 상황을 맞은 두 주인공의 모습을 조명한다. 환상동화소설에서 더 나아가 판타지소설의 얼개를 지닌 이 작품은 종교적 성찰과 존재론적 고민을 장르적 기법 속에 담아내었다.
이러한 어둠과 자극적 파격은 <입을 닥쳐라>에 이르면, 때때로 당혹스러워진다. 하지만 내면의 이야기는 기묘한 설득력을 얻으면서 광적인 상황에 참여하게 된다. 그 불쾌한 경험 속에서 빠져나왔을 때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면서 현대적 관계의 폭력적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는 <맑은 아침>에서 꿈 많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일탈로 그려지지만 다소 완화된 곡선을 그리며 독자의 숨통을 열어준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 단편 <히마우꼬>는 사실 리포트 형식을 취한 글로, 세계를 무대로 역사를 변주하여 지식인의 양태를 그려낸 것이다. 유사 인문학적인 문장 그 자체로 종횡무진하고 있어 독자로서는 지적인 쾌감을 얻을 만하다.
▪ 재기 발랄하고 만화적이거나 일상적인 소박한 터치의 소품들, 2부
이 소설집의 2부는 1부의 디스토피아적이고 환상적인 무대와는 약간 결을 달리해서 다양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를 만화적인 터치로 건드리거나 시트콤적인 상황이나 사실적인 설정 안에서 보여주고 있다. 유머가 중요한 요소로 많이 쓰이는데 때로는 가볍고 호의적인 유머이지만 때로는 지독하고 짓궂은 유머로 독자를 난처하게 하기도 한다. 그때 유머의 정치성이 날카롭게 드러나기도 한다.
<웃는다>는 블랙 유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길거리의 상스러운 유머를 긁어모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 단편에서 길거리 유머에 담긴 편견과 잔혹함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배치해놓았다. 이 유머를 읽다 보면, 웃어도 이상하고 안 웃자니 그 역시 어색할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저자가 이 소설에서 의도한 유머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불쾌한 유머를 조금만 참는다면 <중국호떡>과 같이 익숙하고 식물적인 만화적 유머도 있다. <구원투수 장민수>의 연극적이고 만화적인 설정의 경우 화자이자 주인공인 장민수의 씁쓸한 발언에서도 다소 가볍고 생각 없는 유머의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엉뚱한 만담과 일상적인 배경에서 드러나는 <동네>의 유머는 평범한 관계에서 정치적이고 거시적인 면모까지 드러내면서 농담의 방향을 순수문학적인 주파수와 맞추어놓았다.또한 <만나지 못한 사람 만나다>의 기교적인 설정이나 <파인더, 파인더>의 담담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상황, <포스트씨리얼리즘>의 만화적이면서도 풍자적인 경향 등을 산뜻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