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의 아가페 사랑
느림과 빠름의 미학은 소금과 설탕처럼 서로 상호 보완적 새의 날개와 같은 것이다. 속도가 반드시 유리한 것이 아니고, 느리다고 반드시 게으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진솔하게 자신의 마음을 담아서 삶을 사람답게 살고 있느냐일 것이다. 오늘 나는 교회에 가면서, 한문공부를 잠시 했는데, 取와 恥를 배웠다. 발음으로 取(취)이고, 恥(치)인데, 옛날에는 서로 발음이 같았을 것이고, 아마도 ‘귀’가 변형되어서 ‘취’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恥는 귀와 마음을 서로 묶어놨다. 귀에 마음이 있다고 하니, 아마도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면서 귓불이 불그스름해진 진솔한 부끄러움을 의미하는 것 같다. 뭔가 속마음을 들켰을 때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변하는 것. 그것은 좋은 것이다. 양심의 얼굴이 표정에 드러나는 것이므로. 그런데, 부끄러운 일에도 귀가 불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혹시 내가 그럴까, 오늘 가만히 내 자신을 생각해 봤다.
110권의 책을 쓰면서 나는 사연도 많았고, 인생의 굴곡도 많았다. 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나를 알겠고, 혹은 나를 안다고 하는 사람도 나의 속까지는 모를 수도 있는 것이고, 사람의 사연은 안다고 그것이 다(多)가 아닌 경우가 많았다. 나는 나의 주변의 사람들이 좀 더 진지해지길 진심으로 많이 바란다. 겉으로 돌면서 그저 입에 발린 그런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잡담이 나는 무척 싫다.
오죽 했으면 恥에 마음과 귀를 묶어 놓았을까? 생각도 그렇다. 생각할 사(思)를 보면 밭과 마음을 묶어 놓았고, 여기서 밭(田)은 머리를 말한다. 머리통을 밭 전(田)처럼 표현한 것 뿐이다. 田도 머리통처럼 생기지 않았는가? 十은 정수리를 의미한다. 심장과 머리를 그려놓고서 ‘생각’을 의미했으니, 가슴속 심장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 느낀다.
말하고자 하면 나는 참으로 할 말이 많다. 그러나 입을 다문다. 침묵이 얼마나 날카로운 칼끝으로 자신의 과거를 살피는지 나는 안다. 깊은 밤, 밤하늘의 별들처럼 영롱하게 나에게 떠오르는 많은 나의 사연들이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1989년 8월 12일 나는 기독교복음선교회 정식 회원이 되었고, 그때가 순천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또한 술과 담배를 하면서 해병대를 전역했던 국민대 시절, 1999년 비로서 새롭게 나의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니 나는 그때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물론, 나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던 2009년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결혼기념일 6월 8일에 이혼도장을 찍었으므로. 6년의 결혼생활이 끝나고, 고독하게 나의 삶을 돌아보다보니, 비로서 펜을 잡게 되었고 그렇게 지금은 책에 묻혀 책과 결혼하여 살고 있다.
내가 이렇다 보니, ‘9’가 좋기도 하고 무척 싫기도 하다. 이혼이 꼭 결별은 아니다. 이혼도 어쩌면 결혼의 연장선에서 인생으로서 살아가는데 삶의 경험이라고 스스로 변명한다면 궤변이라고 누구는 말할 수도 있겠으나, 여하튼 나는 내 인생의 절벽끝에서 다시 살아나 지금은 굳센 남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누가 나에 대해서 뭐라고 한다면, 나는 내가 가장 존경하고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정명석 목사님의 친필 편지로서 말하겠다.
“너만 열심히 해라”
이 책은 2014년 9월 28일 정명석 목사님의 주일설교를 듣고 내 삶에 적용해서 쓴 수필식 글들의 묶음이다. 사랑은 인류문명이 오랫동안 탐구하고 연구하고 논의했던 묵직하고 아름다운 주제이므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밖에 없고, 나도 그러한 인류문명의 보편적 흐름속에 나의 견해를 던져본다.
이 책의 마음을 나의 존경하는 정명석 목사님께 바친다.
2014년 9월 28일
장창훈 작가